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이 방울방울 뭉쳐 비라도 내릴 것 같을 때, 그런데 마음 놓고 털어놓을 어느 누구 하나 없을 때, 자그마한 일기장이라도 있는게 참 위안이 된다.
예전부터 사람을 상대로 공유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을 활자에 담아 털어넣곤 했다. 글은 참 좋다. 쓰다 보면 생각도 정리되고, 쓰는 김에 잘 써보고 싶어져 끄적이다 보면 뿌듯하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아무도 안 본다는 것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주로 동굴에 들어가서 쉬곤 한다. 쉰다고 하기도 사실 애매한 것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그저 밖에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의 파도에 그대로 떠밀리는 것 보다야 나을 뿐. 뭐, 사람 좋아하는 외향인이 되어서도 딱히 다를 바는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동굴이 제일 편하다.
나도 한때는 사람을 낙원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 다시는 그런 짓 안해.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사람을 낙원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출처를 찾아보니 위의 인용구가 원본이더라. 참 슬프면서도 맞는 말이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도, 철저히 혼자가 되어 버려진 순간에도, 모두 사실이었다.
“낙원”은 누군가에기는 “구원”이 되기도 하는데, 나에게는 “동굴”이 적절하겠다. 힘들고 지칠 때 찾아갈 수 있는 동굴같은 존재, 그것이 사람인 적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는 것, 이해받는 것이 얼마나 따스하고 행복하던지. 그러나 행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힘없이 바스러지곤 한다.
가까울수록 더 잘해주는 것, 그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또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슬프게도, 이 지독히 단순한 진리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내가 그렇다. 이 파괴/착취적인 성향은 결코 동굴을 무너지지 않게 그대로 놓아두는 법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야 털레털레 뛰어나오며 “사람을 낙원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말이나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낙원을 열심히 찾아 헤매다가 외로움에 벌벌 떤 적은 있었을지언정,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낙원이 되어줄 생각은 하지 못 했다. 타인을 이해하기는 싫으면서도 나는 이해받기를 원하나, 애초에 그런 것은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괜히 분하고 억울하다. 참으로 어리고 유치한 마음, 사람 아닌 일기장에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침묵을 지키는 일기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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