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하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사랑합니다.
부대 정문을 나온지 5일째 되는 새벽이다.
입대 초까지만 해도 아주 가볍게 잠깐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다녀오려 하였다. 당연히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2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삶을 지탱하는 모든 축이 새로 세워졌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습관과 사고방식, 새로운 사무실, 새로운 집. 살던 세계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 삶은 결국 기한이 도래하여 종료되었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 마치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다. 눈을 뜨고 나니 시작점에서 바로 이어서 현재로 온 것 같다. 모든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기억이 벌써 가물가물하다. 그 사이에 뭔가 많은게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어째서인지 시간만 훅 지나갔다.
부대 정문을 나와 짐을 잔뜩 들고 우체국을 거쳐 버스 터미널에 들렀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지나쳤다. 적어도 나의 삶에서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평온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약간의 인생무상을 생각했다. 비슷하게 느낀 적이 2017 수능 때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모두가 나를 응원해주었지만 저녁에 홀로 돌아오는 길이 조금 공허했다. 마침 이틀 전이 수능이었다. 이번에 시험 보는 사람들에게 끝나고 고생했다는 인사를 덧붙여줬다.
전역하면 삶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당연히 아닌 거 알지만 기분만은 그랬다. 이제는 머리로도 알고 마음으로도 안다. 그냥 새로운 생존 투쟁의 단계로 진입한거다.
긴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냉동에서 깨어난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알고 있던 ‘나’의 기억이 많이 흐려진 탓에 가끔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
입대 전과 비교해 주변 환경과 인간관계는 그래도 아직 많은 부분이 연속적이다. 사실 몇 개 빼고는 제자리에 가깝다. 그렇지만 짧지 않은 시간동안 겪은 일들이 분명 내 성격을 바꿔놓았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이 조금은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새로운 자아를 구축하는 자리에 예전과 다른 것들을 채워 넣는 중이다. 같은 일을 겪어도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한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중이다. 혼자 누워서 힐링하며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시간도 좋지만, 그것에 앞서 따뜻한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금새 외로워져서 코딩이고 취미고 뭐고 없다. 어찌 보면 생활관은 친구를 만들고 같이 지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힘들거나 심심할 때 언제든 기대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항상 옆자리에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좋은 점 중 하나는, 그들은 지금 내 모습에 집중해준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신경쓰지 않고, 시시각각 변화하고 성장하는 내 새로운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해주었다. 아무래도 오래 알던 사이에서는 (그 중에서도 나를 얕게만 아는 관계에서는) 내 모습과 생각이 자꾸만 바뀌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질감이나 무언가 저물었음을 느끼게 되지 않는가.
매일 새롭게 달라지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내면을 보아주고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건 분명 축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그때처럼 그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다들 많이 바쁘다. 하루아침에 친구가 없어진(?) 나는 고독에 시달리는 중이다.
깊은 고독과 슬픔에 시달리던 어느 밤이 있었다. 불쌍한 나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방을 청소하고 짐을 정리했다. 군대에서 얻어간 가장 소중한 것들 중 하나가 훈련소에서 받은 편지였다. 수십장 쌓여있는 관심과 애정의 흔적들을 보며 슬프면서도 기뻤다. 살면서 언제 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받아보겠나. 잊고 있었던 이름들이 떠올랐다. 고마웠던 기억들도.
그동안 나는 감사 인사를 표현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오래도록 미뤄왔으나 못 했던 답장들을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받았을 때 느꼈던 설렘과 기쁨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잘해주는게 결국 나의 행복이고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니까.
마음이 몹시 혼란스럽고 제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내 의지와 다르게 마음이 자꾸만 다른 길로 새고 있다. 어느 때는 행복하다가도 언제는 긴장되고 고통스럽다. 자그마한 것들에 기분이 하늘에서 땅까지 오락가락하는게 우스우면서도 피할 수 없어 안타깝다.
전역하자마자 날짜를 기억하고 제일 먼저 연락해준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때 알게 되어서 중학교도 같이 다닌 친구인데 언제 봐도 참 한결같다. 군대가 큰 일이라지만 자기 삶도 아닌데 이렇게 관심 가지고 챙겨주는게 나는 정말 고맙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멀리서 찾아와주는, 언제 보아도 반가운 친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