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발견과 효율적 관리를 통한 과학적 사고예방 시스템
KIDA(한국국방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신인성검사에 대한 설명이다. 아마 군과 인연이 있다면 한 번 즈음 보았을 듯 하다.
대한민국 군은 사고 예방에 무척이나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휘관은 자신의 관할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 큰 책임을 묻게 된다. 아무래도 병사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하면 중대장부터 단장까지, 어쩌면 그 이상까지도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다.
사고는 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아닌가. 다들 건강하고 무사하게 복무를 수행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달달한 꿈은 현 시점 대한민국의 국민개병제(징병제)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아픈 사람들까지 싹싹 끌어다 모아와놓고는 사고가 안 나기를 바란다니, 사막에서 비 오기를 바라는게 빠르겠다.
징집병으로 입대한 청년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익히 알 것이다. 그나마 대우가 나은 초급간부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병은 오죽할까.
물론 병사의 스트레스와 간부의 그것은 결이 다르긴 하다. 병사는 업무상 스트레스는 적은 편이다. 대신 다른 것들은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수준이다. 그 중 으뜸은 극단적으로 강요되는 영내대기 의무다. 나가지를 못한다.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은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성향에 따라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바깥으로 튀어 사고를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병사들 힘든거는 힘든거고, 일단 사고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군인들의 정신건강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입대 직후부터 받아드는 무수한 양의 심리검사지와 설문조사도 그 영향일 것이다. 검사들은 200문항을 가볍게 넘기기도 한다. 솔직하게만 답변한다면 개인의 정신을 꽤나 상세하게 프로파일링 할 수 있을 정도의 정교한 문항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 다수의 군중을 상대로 정신건강을 파악하는 가장 경제적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있다. 그 살기 힘든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힘들다고 여겨지는 집단 중 하나인 군에, 비자발적으로 입대한 불쌍하고 힘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사고를 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량적으로 계량하려는 시도 자체가 폭력이다.
당연히 누구나 뛰쳐나가고 싶을 것이다. 다만 고도로 사회된 공적 자아가 그러한 행동을 저지하는 것 뿐. 누군가가 “ 힘드니? ”라고 물으면 보통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다: 진짜 있는대로 털어놓고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기, 또는 울분을 삼키고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택할 것이다.
과학적 사고예방 시스템 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다. 무단으로 사람을 정신분석 해가려는 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솔직하게 “ 나는 사고위험인자요 ”라고 밝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지, 의문이 든다. 나는 최근에 실시한 검사에서 잠을 못 자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그러나 활발하고 씩씩한 병사 의 페르소나를 제시했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아도 꾹 참고, 일상 생활에서 멀쩡한 척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정상인 의 새로운 정의가 되었다. 많은 것이 비정상인 곳에서 모두가 정상이기를 바라는 이율배반적 욕구. 과연 사고 예방 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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