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140일차, 심신의 변화

벚꽃이 예쁜데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손으로 그린 것

생일이던 올해 2월 11일에서 이틀이 지난 아침에 입영하여 어느덧 140일차가 된 오늘, 이곳에 와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지 기록해보고자 한다.


1. 사회와의 소통이 어색해짐

가장 크게 체감하는 부분이다. 삶의 기반이 완전히 이동하고, 인간관계도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눈을 뜨고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보는 사람 중에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바깥 세상의 사람은 휴가 때에나 잠깐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기존의 인간관계는 동면 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물론 사교성 좋은 사람들이야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와든 활발히 교류하며 삶을 영위하겠지만, 나는 점점 보고 듣는 것도 대화할 때에 나오는 주제도 아주 국방-specific한 토픽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왜인지 밖에서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금 뻘줌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인스타에 들어가기도 조금 꺼려진다. 무언가 약간의 거리감이 생긴 느낌이다. 진짜 거리가 생긴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들고 나만 느끼는 거리감인 것 같다. 여기서 적응할수록 기존 밖에서의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나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것 같고, 소통이 적어 그 변화를 따라오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지금 내 모습이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도 생긴다.

흑흑 어렵다..

2. 자유 의지를 얻고자 하는 의지 상승

이 곳에서는 익히 알려진 대로 많은 것이 제한된다. 그 중 대다수는 직업(?)적 특성으로 충분히 이해할 만 하나, 개중에는 정말이지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에나 집중할 것이지 머리나 기르고 다녀? 머리 잘라!”식의 말도 안 되는 것들 또한 다수 존재한다. 폐쇄적 사회에서 직무상의 위계가 업무적 명령권을 넘어 개인의 영역까지 잠식해버리는 슬픈 현실인 것이다.

나에게도 (당연히) 그 마수가 뻗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포기하고 나의 삶을 우울과 분노에 빠뜨릴 생각도 없었다. 외부에서의 압박은 나로 하여금 주권자로서 속박에서 벗어난 개인이 되고자 하는 힘에의 의지 를 극히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타인이 아닌 오직 나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을 갈망하게 되었으며, 기존의 덕목과 규율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창조하고 준수하는 자율적 가치에 의해서만 움직이도록 변모하였다. 누구든 나로 하여금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나의 생각까지 제어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코딩을 게을리 할 수는 없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스스로 정하고 지켜온 나의 가장 만족스러운 정체성 중 하나는 바로 창작자이자 엔지니어로서의 개발자이다. 군대는 흔히 개발자에게 커리어의 장애물 또는 정지점으로 여겨지곤 한다. 군대와 코딩이라는 두 단어를 보고 있노라면, 서울과 쿠퍼티노 사이를 가득 채운 미네랄 워터(태평양) 만큼이나 광활하고도 물리적인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 환경에서 나마저도 나의 자기계발(?)이자 취미를 포기하는 것은 현재를 비롯한 모든 미래의 나에게 매우 몹쓸 짓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나면 장땡이다.

수많은 실험과 실패, 그리고 성공이 있었다. 차마 이 곳에 서술할 수는 없는, 참으로 기상천외한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결국 나는 손가락 끝에서 IntelliJ 맛이 떠나지 않는 꾸준한 코딩 루틴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관련해서라면 책을 한 권 쓸 수도 있지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내 마음 속의 원본 1부만 유지하겠다.


1. 무릎 질환이 완치됨

약 1년 전 무렵에 발병하여 지난 겨울부터 올해 초까지 나를 괴롭힌 슬관절 질환(진단명 추벽증후군)이 있었다. 당시에는 걷는 것도 힘들어 목발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수술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입영일도 두 달이나 미루었다. 그러다가 내 고통에 찬 얼굴을 본 의사 선생님이 불쌍한 표정으로 처방해주신 프레드니솔론(스테로이드) 2.5mg을 일 3회 경구투여하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통증이 잦아들어 보행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다 낫지도 않았지만 알 게 뭐람 회복이 이렇게 빠른데. 진통제 두 통만 들고 그냥 훈련단으로 입소해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이어지는 빡센 훈련을 버티며 걱정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놀랍게도 무릎을 많이 사용할수록 통증이 줄어드는 것이었다. 그렇다. 결국 운동부족이었던 것이다. 작년에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이동은 전기자전거가 책임져주고 회사에서는 걸을 일이 없어 하루에 1000보도 간신히 채우는 삶을 살았으니 무릎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그만 슬관절 주위 근육몬들에게 “너네 필요없어 집에 가”라며 소집 해제 명령을 내려버린 것이었다.

그 후 나는 빡센 전투뜀걸음, 행군, 그리고 부대 전입 후 풋살까지, 무릎을 혹사(?)시킬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건강해지는 경험을 통해 운동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말았다.

2. 체력이 허약해짐(?)

위에다가도 써 놓았듯이, 운동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과 재미있는 것은 당연히 별개이다. 그리고 나는 재미있는 일이 아니면 안 한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안 했고, 스스로이게 기대했던 바와 달리 군대에 와도 똑같이 별볼 일 없는 체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니 사실은 더 저질체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심심하면 산책이라도 가서 만보씩 걸었지만 여기에서는 딱히 산책 갈 곳도 없어 앉아서 코드를 짜거나 누워서 휴대폰을 보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일할 때에도 책상에만 앉아있기도 하고.

3. 밥은 잘 먹음

이곳에서는 밥을 아주 잘 준다. 어느 정도냐면, 직접 튀긴 치킨과 케이크를 비롯한 각종 싸제 음식들이 자주 나온다. 고오급 식품들에 혀가 복에 겨워 눈높이가 높아질대로 높아진 이곳의 병들은 월간 식단표를 뽑아 놓고 끼니마다 미리 메뉴를 확인하여 텍스트만 봐도 구미가 당길 때에만 식당으로 향하는 일이 잦다. 일단 내가 그렇다.

식당 말고도 고품질의 식음료를 획득할 방법은 많은데, 육군의 P.X.에 대응되는 이곳 공군의 B.X.가 있다. 나는 주 1회 이상 그곳에 방문하여 신선한 냉동식품과 과자, 그리고 나의 주식(?)인 라면을 대량구매하여 비축해놓는다. 최근에는 육개장 사발면 24개들이 한 박스도 사 놓았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다.

4. Smoke free life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내가 생활하는 이곳은 복무 기간도 긴 주제에 과정도 험난한 자원입대를 거쳐 입영하고 정보/통신 특기까지 획득하여 이 부대에 지원에 의해 전입 온 사람들로만 소수로 운영되는 연유로 인해 사람들의 전반적인 특징이나 성격이 통상의 미디어에 노출되는 군대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 곳에 와서 놀란 것은, 생활관 네 개를 통틀어 흡연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 이는 의도된 바는 없었겠지만 나에게는 참으로 상당한 복지였다. 평생 실내 간접흡연의 피해자로 살아오던 내가 이제는 담배 냄새를 잊어버릴 정도인 것이다. 덕분의 나의 폐는 살면서 가장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마치며

가끔 의심이 든다. 나는 집에 갈 수 있는 걸까? 내년이 올까? 살려주세요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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