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먹기

많이 먹고 많이 움직이는게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다. 사실 일단 잔뜩 먹어놓은 다음에 그 해결책으로 “움직이면 되지”를 제시했던 것 같다. 많이 먹는건 쉽지만, 슬프게도 많이 움직이는건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뱃살이 점점 튀어나오더니 급기야는 셔츠 핏이 무너지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어렸을 적 나는 살이 정말 안 찌는 체질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키는 180cm인데 체중은 60kg인 시절도 있었다.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가지고 있던 날렵한(?) 턱선과 얄쌍한 옷 핏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3년 전에 회사 생활을 하면서 체중이 82kg로 불어났다.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많이 먹었다. 퇴사하고 나서는 약간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예전 체중으로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뱃살은 덤.

그대로 그럭저럭 살았는데 군대에 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하루에 몇 번 사무실 왔다갔다 하는 것 말고는 가만히 누워서 안 움직이는데다가 딱히 어디를 놀러가는 것도 아니니 운동량이 극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제 밥은 그대로 먹고 심지어 잦은 야간 근무와 야식도 곁들였다. 어느 정도로 몸이 허약해졌냐면, 휴가때 하루에 2~3만걸음 걸었다고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겼다.

얼마 전 마지막 휴가때 집으로 돌아와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내가 아무리 허약체질이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대로 살면 빠른 시일 내에 몸에 있는 모든 근육이 소멸되고 모두 복부지방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정말이지 뭐라도 해야겠다는 의지가 오랜만에 샘솟았다.

일단 체중을 줄이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최근에 20kg 넘게 커팅에 성공한 형에게 물어봤다. 비법은 다름아닌 저녁 6시 이후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 그럼 야식을 도대체 얼마나 먹었던 건가 싶었지만, 나도 밤에 뭔가를 잔뜩 먹는 타입이라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서, 하루에 한 끼만 먹어보기로 했다.

사실 공복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다. 탄수화물을 제때 넣어주지 않으면 허기가 지고 걷는 것도 힘들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올 정도였으니. 이게 정제 탄수화물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져서 생긴 증상인건 알고 있었는데 그간 딱히 해결할 만큼 큰 동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었다.

생각이 바뀐건 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생각보다 괜찮았건 어느 하루를 보내고 나서부터였다. 경험상 이정도면 배고파서 쓰러질 타이밍인데 이상하게 멀쩡한거다. 왜 그랬나 생각해보니 그때 스트레스를 안 받았고 딱히 움직이지를 않았었다.

이 경험으로 1일 1식 아이디어가 선명해졌다. 굳이 죽을만큼 배고픈게 아니라면 하루에 밥을 여러 번 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느 정도 운동량은 든든한 체지방이 커버해줄 거니까 딱히 기아상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한 끼 먹을 때에만 영양소 안 빠지게 행복하게 맛있게 잘 먹으면 된다.

지금 일주일째 실천중인데 생각보다 할 만 하다. 물론 그 기간동안 업무적 스트레스에 노출되어본 경험은 없기 때문에 이대로 일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끼만 먹고 15,000걸음 정도로 밖에서 돌아다녀도 딱히 무리가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체중 감량 속도는 기대보다 빨랐다.

일주일 전에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77kg 가량으로 측정되었다. 지금은 74kg으로 내려왔다. 물론 수분이랑 근육이 날아간 것일 수도 있겠다. 내 소중한 근육들 달아나는게 싫어서 생존용 근육과 재활중인 회전근개는 마구 조져줬다. 밥먹을때 고기 든든히 먹어주니까 근육 회복에도 딱히 지장은 없는 느낌이다.

의외의 효용이 있다면, 예전에는 삶의 다양한 문제로부터 비롯된 정신적 압박에 탄수화물 보충으로 대응해왔으나 이제는 직접 원인을 찾아 해결하거나 아니면 밖에 나가 산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밥이 너무 맛있다. 세상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있어도 소중하지 않은 음식은 없다.

아무튼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계속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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