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대를 간다고?? 정말??
 전혀 무관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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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1999년에 태어난 나는 2018년부터 대학교 1학년을 이수한 주변 친구들이 국민개병제의 뜻을 따라 군의 세계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안 가도 돼서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 때는 가기 싫었다. 학교 생활이 너무 재미있었고, 매일매일 코드 짜면서 노는게 좋아서 그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재학생인 관계로 졸업하는 시점 까지는 입영통지서를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군대라는 단어를 애써 잊고 살았으나 시간이 흘러 2021년이 되었고, 아직도 군대를 갔다 오지 않는 나를 몹시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느 정도 환경도 나아졌고 깡(?)도 생겼겠다, 이제는 가야지 싶어 토익을 따고 카투사에 지원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공군으로 가자
다음 선택지는 공군 정보보호병이었다. 공군을 선택한 데에는 육군보다 복무 환경이 대체로 낫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 중에서도 정보보호병을 선택한 것은 최대한 전공을 살려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정보보호병은 선발로 모집하는데, 확실한 합격을 위해서는 학위와 자격증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학위가 생길 때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놀면서 졸업하였다. 졸업이 다가올 무렵에는 정보처리기사 자격 시험에 응시하여 자격증도 획득하였다. 그렇게 어마무시한 가점을 받은 채로 843기 공군 모집에 지원하여 회사 연차 내고 계룡으로 면접까지 보러 갔다 왔다. 다행히 한 번에 합격했다.
군대 가고 싶다
원래대로라면 2022년 12월 5일에 입영해야 했다. 그런데 12월이 다가오자 무릎에 달고 다니던 질환이 몹시 심각해져 입대는 커녕 입원을 고려해야 할 수준까지 악화되었다. 그 해 8월 즈음 왼쪽 무릎에 발생한 슬개건염이 치료 시기를 놓쳐 양 무릎 추벽증후군으로 발전한 것이다. 의사는 수술을 권유하였으나 더이상 입대를 미루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고, 주변에도 연말에 군대 간다고 말해 놓은 터였다. 빠른 치료와 입대가 간절했던 나는 약만 먹고 증상을 가라앉힌 다음에 일단 입대하기로 결정했다. 시기는 이듬해 2월 13일. 생일 이틀 뒤이다. 다행히 증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호전되었고, 회사를 두 달 가량 더 다니다가 입대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긴 5주
처음에는 만만하게 생각하고 들어갔다. 5주짜리 출장이겠거니, 고작 한 달 남짓인데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예상은 입영 당일 처참히 부서졌다. 걸어들어가는 길부터 빡센 조교들 눈빛에 쫄아서 기가 팍 죽었다. 생활관에 처음 들어가서 짐을 내려 놓는데 잔뜩 녹이 슨 관물대와 나무 침상을 보고 시설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알고 보니 당시 훈련단에서 사용한 건물중에 제일 나은 편이었다).
1주차
입영 첫 주차는 아직 정식으로 훈련단에 입소하지 않은 기간이다. 약 일주일 간은 가져온 옷을 입고 생활하며, 코로나-19 검사 및 격리, 신체검사, 문진 등 “얘가 여기 있어도 되는 애인가”를 검증하였다. 할 일이 별로 없어 눈 뜨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대기하며 보냈다. 아직 아무도 모르고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노트도 없어서 책만 엄청 읽었다. 노트와 책을 많이 가져가지 못한 것이 매우 후회되었다. 시간이 정말 안 간다.
2주차
두번째 주는 “군인화 적응 기간”이라고 불린다. 귀가조치 당하지 않고 남은 인원들은 이제 예비훈련병에서 훈련병으로 신분이 전환된다. 이 때 부터는 민간인이 아닌 군인 취급이다. 여기저기서 훈련병들이 조교에게 1:1 대면 교육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다가는 훈육관의 눈에 띄어 맨몸 웨이트 트레이닝의 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이 때에도 시간이 정말 멈춘 건가 싶을 정도로 안 갔다. 금요일에는 첫 번째 전투 뜀걸음을 실시했는데, 전투복을 입고 2km를 뛰었다. 남들은 어렵지 않게 뛰었는데 나는 힘들어서 죽을 뻔했다 ㅠ
3주차
이 때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다. 화생방, 사격, 각개전투 등이 있었다. 훈련은 나같은 유리몸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살짝 까지거나 멍들 수는 있는데 어지간해서는 탈진하거나 다칠 일은 없었다. 이 무렵부터는 시간이 다시 정상적인 속도로 흐르기 시작한다. 아침에 나가서 훈련받다 점심 먹고 또 훈련받으면 하루가 다 지나가 있다. 그리고 3주차 월요일 부터는 드디어 기다리던 인터넷 편지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멘탈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한다. 흑흑 감동의 눙물 ㅠㅡㅠ
4주차
마지막으로 남은 빡센 훈련 주간이다. 유격이라든가, 기록 사격, 그리고 실습 평가가 있다. 또 열심히 구르다 보면 시간은 간다. 이 즈음 되면 집합 방송 나오기도 전에 느낌이 오고 몸이 먼저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주의 마지막 즈음에는 실습 평가가 있는데, 지금까지 배운 제식, 도수체조, 각개전투, 화생방 등등에 대해 얼마나 훈련을 잘 받았는지 평가하는 단계이다. 훈련 끝나고 시간 날 때마다 생활관에서 동기들과 연습을 자주 해 두었던 터라 다행히 무난하게 넘어갔다. 다만 방독면 쓰고 가방을 안 닫아서 감점ㅠ 마지막 전투 뜀걸음은 군장에 총까지 매고 3km를 뛰었다. 뛰다가 쓰러지고 싶었는데 동기들이 붙잡아 주어서 반 즈음은 질질 끌려갔다(ㅋㅋㅋ). 심장이 태어나서 해본 적 없는 일을 해냈다.
5주차
드디어 마지막 주차다. 공군 훈련병들의 숙명인 종합 이론 평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훈련단에서 점수를 잘 받아 높은 등수를 따내야 원하는 자대에 배속받을 수 있다. 시험의 내용은 매우 지엽적인 암기식 단순지식들. 다들 책상을 펴 놓고 책을 열어 교관이 집어준 부분을 글자 하나 안 빼놓고 암기하는 동안 나는 공부가 하기 싫어서 그냥 놀았다. 다행히도 나는 훈련단 점수가 영향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 수료식 D-Day를 세기 시작했다. 안 올 것 같던 3월도 오고 수료식도 왔다. 식에 앞서 연병장에서 리허설을 좀 하느라 피곤하긴 했는데, 덕분에 실수 없이 깔끔하게 잘 마무리됐다. 수료식 끝나자마자 정문을 향해 달려가서 신병 첫 휴가를 나왔다.
짧은 휴가
845기부터는 809기 이후로 명맥이 끊긴 수료 외박이 부활했다. 수료식이 끝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박 3일의 외박이 주어진다. 휴가증과 함께 나온 열차 티켓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전투복을 입고 돌아다니는게 처음이라 매우 어색했다. 사람들이 나를 다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물론 아무도 신경 안 썼다). 훈련병 때에는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이등병 계급장이 조금 초라해 보였다. 집에 가서 거울을보는데 얼굴이 까맣게 타고 머리도 짧아서 모양이 꽤나 우스웠다.
 2박 3일은 매우 짧다. 집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였고, 마지막 날은 점심 먹고 바로 출발해야 했다. 사실상 하루밖에 없는 셈. 침대에 누워서 있다 보니 시간이 다 갔다. 그렇게 붙잡히듯 다시 진주로 향했다.
특기학교
나는 정보체계관리 특기를 가졌다. 그래서 앞으로의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기 위해 정보통신학교 1주 3일 과정에 입과했다. 시설은 딱 봐도 아주 열악했다. 그저 벌레가 안 나와서 다행이었다. 좋은 점(?)은 이제 훈련병이 아닌 이등병 신분이라 그렇게 막 굴리지는 않는다는 것. 공중전화 사용도 무제한이고 생활관에는 TV와 자판기도 있었다. 
 배우는 내용은 딱히 많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강의와 실습을 충분히 진행하기 어려웠다. 컴퓨터 공학 학부 2학년 즈음에 배울 법한 간단한 지식들 위주였다. 네트워크, 운영체제 기초 정도. 실습 평가는 UTP 케이블 만드는 것이었다. 나름 재미있었다.
 특기학교 2주차에는 자대 TO가 나왔다. 자신의 점수에 맞춰 갈 수 있는 곳을 골라 1, 2, 3지망을 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843기 지원 당시 합격자 중 3등이었는데 845기로 오면서 1등으로 재산정되었다. 그래서 다행히도(걱정 많이 했다) 원하는 곳을 모두 갈 수 있었다. 같은 기수 정보보호병 7명이서 모여서 각자 자신의 등수와 원하는 자대를 밝히고, 평화로운 합의를 거쳐 배속지 희망 서류에 서명을 했다. 나는 공군사관학교를 선택했다.
마치며
아직 자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가 어떤 곳이고 어떤 일을 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시설이 기대 이상이고 부조리나 악폐습이 전혀 없다는 것? 20대 초반 내내 군대라는 토픽이 내 사고와 미래 계획에 어지럽게 엉겨붙었는데, 이제 드디어 그걸 해결하는 첫 단추를 끼웠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생길 지 모르겠다. 아마 어떻게든 살다 보면 전역일도 오지 않을까? (제발..)
저를 응원해주신 분들께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아니면 어려웠을 겁니다,,, 인터넷 편지 써주셔서 진짜 정말 감사하고(ㅠ), 항상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있다가 나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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