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는 것들에 대하여

무언가 돌고 돌아오며 반복되는 심상을 생각한다. 태양은 매일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난다. 하늘은 울다가도 웃는다. 날씨가 더울만 하면 다시 추워진다. 낙엽을 떨구는가 하면 갑자기 눈을 떨구고, 포근한 솜이불 같다가도 세찬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나가는 것들은 다시 돌아오는 것 같지만 그중 어느 것도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은 항상 예쁘지만 어느 하나 어제와 똑같은 하늘은 없다. 길가에 스치는 풍경도 내일이 되면 똑같이 볼 수는 없다. 매 순간 사람과 공간과 시간의 유일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그 때만의 고유성은 무엇으로도 재현되지 않는다.

삶에서 한 번 지나간 길은 다시 밟을 수 없다. 오직 앞으로만 가는 그 길 위에서 잠시 뒤를 바라볼 때, 그토록 행복하였으면서도 다시 돌아오지는 않기에 슬프도록 아름답게 빛난다. 살면서 어쩌면 다시 마주할 수 없을 시간들, 오래도록 기억에 박혀 힘든 시기를 살아내게 도와줄 추억들.


이미 지나버린 시간들을 추억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루였다고 생각하던 나날들이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특별했다.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밥을 먹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일상이었지만, 어찌 보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삶을 받아들이는 순수한 내가 있었다. 내 손으로 빚어내며 실수하거나 후회할 걱정 없이 온전히 나의 것이었던 시간들이었다. 상처받은 적 없었고 상처입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매일이 처음인 것처럼 세상과 마주하며 나아갔다.

그러나 시간이 쌓일수록 마음에 무게추가 늘어만 갔다. 마음을 방어하기 위해 점점 갑옷을 두르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겁이 나 주춤하게 되었다. 실패와 좌절이 쌓이고 웃음 밑에는 깊은 우울이 깔렸다. 과연 나는 상처를 온전히 극복했을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성공했을까?


내 성격은 그리 따뜻하지 못하다. 울고 싶지 않아서 웃는 것 뿐이다. 위로하는 손길에 고마워하기보다는 결국 불안해 쳐내는 쪽에 가깝다. 사랑받고 싶지만 이런 어두운 모습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하는 편이다. 때로는 가면을 쓰기도 했다. 이런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지새운 수많은 밤들이 있다.

고독과 불안을 가장 밑에 깔고 가며, 때로는 엎어져버릴까도 고민했다. 더 이상은 상처받은 나를 온전히 위로할 수도 없어졌다. 내가 여기서 슬퍼하며 나자빠지는게 맞을까?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었나? 왜 나는 나에게 슬퍼하지? 나조차도 나를 인정하지 못해 한동안 나는 죽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의 곁에 머무르며 애정과 관심을 툭툭 던져주는 이들 덕분에 산다. 세상에서 등돌리고 멀어지려 할 때 나를 붙잡아주는 고마운 사람들. 없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나를 기억하고 지켜봐주던 사람들. 언젠가 다 보답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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