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는 나의 행복

제목을 너무 변태같이 지었나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젝트 보다는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 특히 창작 행위가 곧 나의 행복이다.

2년 가까이 애정을 갖고 쏟아부은 프로젝트가 이제 안정 궤도에 진입했다.

팀원이 iOS 개발자분을 제외하면 나 뿐이라 뇌내 디자이너, 뇌내 서버개발자, 뇌내 데브옵스, 뇌내 테스터, 뇌내 프로젝트 매니저가 활약해 주었다. 물론 하나의 코어(신체)를 공유하기 때문에 병렬(parallel)로 활동하지는 못하고 동시에(concurrent)만 진행했다.

software development team

협업 비용은 줄지만 나만의 틀에 갇히게 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다만 어쩔 수 없었다. 팀원이 대부분 도망가서…

열심히 코드를 짜고 테스트하고 커밋하고 푸시하고 PR을 머지하고 태그 달아 출시하기를 하루 종일 하다가 힘이 쪽 빠지면 그대로 밥먹고 잠들곤 했다. 다음 날 일어나면(언제가 될 지는 모른다!) 뇌내 프로젝트 매니저가 갑자기 새로운 기능을 제안해 온다. 그렇게 무한 코딩루프가 시작된다.

label everyday_task:

  while (am_I_okay()) {
    implement();
    test();
    deploy();
  }

goto everyday_task;

// NOREACH

뇌내 프로젝트 매니저가 만족해서 인터럽트를 날릴 때까지, 끝은 없는거다.

써놓고 보니 스크럼 같기도 하다. 제일 큰 목표는 마음 속 깊은 곳에다가 적어놓고, 스프린트 백 로그는 이슈에다가 적어놓고, 열심히 스프린트 뛰는거다 (이렇게 하는게 맞나..?).

스크럼

할 일을 정하고 대략 4주의 기간 동안 목표를 수행한다. 매일 간단한 진행 상황 공유를 한다. 뇌내 팀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자동으로 공유된다.

뭔가 목표가 생기면 장작이 공급되어 몇 달 동안 활활 불타는데, 그 목표를 다 이뤘다 싶으면 휴지기로 접어든다. 그래서 수 차례 반복하고 몇 달 쉬고, 또 불이 붙으면 한참 달렸다 쉬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프로젝트가 이제 드디어 끝을 바라보고 있다. 외부 전산망 담당 업체에서 이쪽으로 웹훅만 쏴주면 된다. 요청은 넣어놨는데 아직 답이 없다.

병목 현상

사람이 병목이다. 엄청 간단한건데 결재받고 요청넣고 답변 기다리고.. 윽!

아무튼 정말 불꽃튀기게 몰입하다가 이제 할 일이 없어지니(뇌내 프로젝트 매니저가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고 있다) 허전하다. 보통 프로젝트 끝나면 지친 심신을 달래는 것 같은데, 이번 프로젝트는 내내 너무 행복했어서 딱히 지치는 일은 없었고, 그냥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래서 vim을 제대로 배워보기로 했다.

vim-vs-emacs

나는 vim을 선택헀다.

지금 쓰는 맥의 esc 키가 물리 키가 아니라 그냥은 쓰기는 힘들고, 캡스락을 esc로 바인드해서 연습하고 있다. 캡스락 키의 원래 기능인 한/영 전환은 예전처럼 Command + Space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할 일을 찾아 떠나는건, 어딘가 몰입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이기도 하다. 몰입 밖의 현실 세계에서 나는 ‘세상의 거대함과 자신이 물고 태어난 수저에 대하여 탄식하고 신분하락과 몰락의 공포에 떠는’ 가엾은 청년 1일 뿐이다.

젊은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허무주의에 빠져있다. 10대와 20대와 같이 젊은 세대일수록 더욱 심하다. 세상에 대한 그 어떠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채로 격동의 시대로 던져져 버린 청년들. 다가올 미래가 과거와는 너무나 다르기에 어른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아이들, 파괴된 전통과 상식의 잔해 속을 헤매는 실존적 고아들.
출처

존재론적 외로움도, 미래에 대한 막막함도, 육신의 배고픔도 잊은 채로 행복할 수 있는 건 코오-딩 할 때 뿐이다. 좋게 말하면 취미, 나쁘게 말하면 도피처. 내 삶에는 이런 탈출구가 몇 개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다음 프로젝트 시작은 1월 중순으로 계획되어 있다. 곧 새로운 설렘이 찾아올 예정이다. ㅎㅎ

마치며: 잠깐 쉬어가는 이 틈에 경제활동에도 참여해보고자(=용돈이나 벌어보고자) 배민커넥트 다시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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