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의 탄생과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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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는 돋아나는 작은 잎과도 같다.

블로그 포스트의 날짜를 보면서 느낀 바가 있다. 예전(약 2년 전)에 GitHub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포스팅이 매우 뜸했다. 강한 동기부여가 일어났을 때에만 포스팅이 일어났다. 결국 중간에 때려치웠다. 그리고 올해 초에 새로운 테마와 함께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내가 생각보다 더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새로운 스크립트와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써서 올리는 과정이 편해지자, 더 많은 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절차가 간단해지자 포스팅 빈도가 올라갔다. 그렇다면 스크립트의 도움으로 아이디어가 더 많이 떠오르게 된것일까? 답은 ‘아니’다. 아이디어는 예전부터 넘쳤다. 글로 쓰지는 않았지만 머리를 스치고 다시 나가버린 생각들이 꽤나 많다. 그 순간 대부분에서 눈 앞의 맥북과 마음속의 추진력이 없어 녹아버렸을 뿐이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행위는 어떠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맥북을 열고, Atom을 열고, 터미널을 열고, blog를 타이핑하고 Enter를 누르고, ./new 스크립트를 돌려야 한다. 태어난 순간 반짝이던 아이디어는 체력이 약해 이 먼 길을 걷다가 그만 쓰러져 죽어버린다.

마크다운(Markdown)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텍스트 파일 맨 위에 이상하게 생긴 양식을 작성해야 한다. 제목과 날짜, 시간 등이 들어가는데 그걸 직접 작성하기 귀찮아 이를 대신하여 주는 new라는 쉘 스크립트를 만들어 놓았다.

번뜩이는 생각들은 계속 떠오르지만 그것이 글로 완성되기까지 거쳐야만 하는 문턱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프로그래밍을 할 때에는 괜찮다. 항상 주제가 같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며 그것은 잘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종의 솔루션을 모색하는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글쓰기에서는 다르다. 글감으로 쓸만한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것은 한여름에 작은 얼음 조각을 들고 밖으로 나온 것과 같다. 그 얼음 조가리를 들고 목적지까지 가려면 아이스팩(강력한 동기)이든 냉동탑차(강력한 의지)든 있어야 한다. 둘 다 없으면? 녹아 없어진다.

이는 흔히 조직에서 보이는 ‘절차의 복잡함이 소통을 가로막는’ 현상과도 관계지어 생각할 수 있다. 헌데 조직은 운영을 위해 절차같은 것이 필요할 가능성이라도 있지, 나의 경우는 그냥 창의력의 발산을 막는 장애물인 것이다. 이런 단순하고 기계적인 절차를 줄이는 데에는 프로그래밍적 접근 방식이 탁월한 효과를 지닌다. ./new 스크립트는 외우기 귀찮은 포스트 헤더를 자동으로 달아줌으로써 상당한 귀찮음을 덜어내 주었고, 뇌내 망상들을 온전히 글로 옮기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면 더 좋은, 더 편한 인터페이스는 더 많은 생각들을 잡념의 구덩이로부터 구해 줄 것이 자명하다.

흔히 사람은 하던 것을 계속 하게 되는 습성이 있다. ‘타성에 젖는다’라고 표현한다. 기존에 하던 것은 경험에 의해 검증되었고, 최근의 기억이라 불러내기가 쉬워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데에 딱히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서 그냥 주욱 하는 것들은 고려 없이, 또는 어쩔 수 없이 채택되어 아주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바꾸는 데에 드는 비용에 생각이 매몰되어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가령 노트북을 책상에 놓고 작업을 하면 매우 편할 것이 자명함에도 바닥에 이불을 깔고 앉아(또는 누워) 작업하는 내가 그렇다. 일어나는 행위가 귀찮아 지속적으로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다. 그 대가는 어깨와 허리 통증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타성의 굴레를 깨고 아이디어를 더 많이 살려낼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아직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new 스크립트가 아직 쓸모있기도 하고(결국 타성에 젖은 것), 딱히 나은 방법을 찾지 못 하였기도 하다. 언젠가 떠오르면 바로 실천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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